21.12.12 쿠팡 인천1센터 오후HUB 후기
21.12.12 01:51
이번에는 정신차린다. 전번에 일일 알바는 일어나질 못해서 친구 김 씨를 홀로 사지로 내몰았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오후타임이라 망할 스트레스-불안정 멘탈로 인한 책임 회피만 아니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필자인 윤슬은 안다. 친구 김 씨, 김 씨는 어디 노가다 일판에서 아저씨를 부르는 것 같으니 김씨가 자주 말하는 단어인 '왕만듀' 라고 부르겠다, 만듀가 아니면 분명 정신병리적 책임 회피에 휩싸여 출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사실 윤슬은 그렇게 돈이 급하지 않다. 그는 급전 50이 5일 내로 필요한 상황이다만, 이미 10은 있고, 25는 3일 내로 받을 예정이며, 나머지 15는 주변 사람의 힘을 잠시 빌리면 빠른 시일 내에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운동이라면 걷기도 겨우하는 윤슬에게 이 사건은 그가 갖고 있는 정신병이 지랄할 만한 수위의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 만듀가 함께한단 사실과 익일입금 9.1은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요소 였다. 윤슬은 만듀를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윤슬은 만듀의 뷰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사실은 거절하기 싫다. 만듀 말은 다 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같이 하기로 했다. 만듀와 같이 살기 위한 계약금 50을 벌기 위해 만듀와 쿠팡을 뛰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윤슬에게는 상하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진짜 노동". 윤슬은 주 8일을 일한다. 학원 조교 알바 1개, 대면 과외 2개, 화상 과외 1개. 대학생 과외 인식과 큰 차이 없이 윤슬은 곰돌이 푸 마냥 배탈이 날 정도로 꿀을 빨고 있었다. 과외 준비는 하지도 않으면, 학원 조교 알바는 3시간 앉아 있으면 2시간은 개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윤슬에게 쿠팡 상하차는 '돈은 고생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줄 좋은 학습터이자 남들에게 '내가 어! 살면서 곱게만은 자란게 아니야!'라고 꼰대짓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곳이였다. 언젠가는 해봐야지, 해봐야지 하다가 23살의 끝자락에 그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21.12.22 02:26
쿠팡 HUB를 뛴지 10일이 지났다. 이제야 글을 쓴다는 사실은, 윤슬이 쿠팡 상하차를 통해 얻고자 한 정신 교육이란 것은 절대 쓸모가 없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윤슬은 쓸모있는 자존감은 낮고, 괴상한 자존감만 높은 편인데, 이는 쿠팡을 가기 전 생각에서 부터 알 수 있었다.
'와 시발 알고보니까 내가 상하차의 신이여서 일 존나 잘하면 어떡하지?' 쿠팡 상하차가 내 천직이면 어떡하지? 계약직 제의 들어오면 어떡하지?'
이딴 망상을 한다는거 부터가 정신머리가 곪은 걸 알 수 있었다.
이 날 아침에 대면 과외를 했을 때 위에 언급한 25가 들어왔어야 하는 수업차였는데,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나는 짤렸다는 것을... 그렇게 들어오기로 한 25는 들어오지 않았고 쿠팡은 윤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16시 30분 윤슬은 XX역에서 만듀와 만났다. 옷을 세 겹, 흰 반팔티, 맨투맨, 학교 후드집업, 숏패딩까지, 입은 윤슬과 다르게 만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왔다. 윤슬도 가벼운 차림으로 오려했다. 하지만 걱정이 많은 윤슬의 어머님은 추울테니 단단하게 입고 가라했다. 평소라면 어머니 말은 좆도 안듣는 윤슬은 이럴 때만 효녀였다. 심지어 바지도 안에 두 겹을 입었다. 단단히 쫄았던게 분명했다. 그 날은 날씨가 추운편이였다. 버스 정류장 앞인 은행건물 안에 들어가면서 만듀와 '아 버스가 안왔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만듀가 준 정관장 에브리타임을 노나먹었다. 처음 경험해본 정관장 에브리타임은 상당한 맛이었다. 건강한 맛을 느끼면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가기 전에 한약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를 탈 때 부터 우당탕탕이였다. 비대면 체크인을 하고 셔틀버스 승차권을 찍어야하는데, 윤슬과 만듀 모두 처음 오는 거라 우당탕탕했다. 훗날 윤슬의 동생도 윤슬의 쿠팡 전도에 의해 쿠팡을 뛰게 되는데 윤슬의 동생은 우당탕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읽으라는 것을 제대로 숙지하고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윤슬은 매우 우당탕탕 이였다. 도착해서 버스도 잘못내릴뻔하고, 정신이 팔린 채로 직원 분의 안내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안전화를 갈아신어야 하는데 안전화 대신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는 등의 멍청한 행동을 계속했다.
신입들은 1시간 정도 안전교육을 하는데 이 안전교육의 내용은 매우 무시무시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머리카락이 껴서 두피가 벗겨졌다는 등 포장을 칼로 뜯는데 잘못된 자세로 뜯어 얼굴에 상처가 난다는 등의 호달달한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꿀을 빨고 드디어 일터로 향했다. HUB에 배정된 사람은 윤슬, 만듀, 그리고 한 남성이였는데, 윤슬과 만듀와 다르게 한 남성은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여자인 윤슬과 만듀는 분류를 배정받았고, 남자인 남성은 윤슬의 동생 후기에 따르면 '진정한 상하차'를 경험했을 것이다.
여리여리한 만듀와 다르게 웬만한 성인 남성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윤슬이 잘하게 생겼는지 윤슬은 빡센 파트에 배정받았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택배에 붙어있는 태그를 보고 지역별 박스에 택배를 넣는 것이였다. 수도권 물량이라 그런지 진짜 엄청나게 많았다.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힘들다고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모두의 기대, 자신의 기대마저 저버리고 윤슬은 분류작업을 매우 못했다. 손이 느렸다. 파트 체인지를 당했다. 그 중간중간 팀장급 직원들에게도 많은 잔소리와 훈수를 들었다. 생각을 안하려고 쿠팡에 온 건데, 일을 못 한다는 사실이 윤슬의 자존감을 계속 깎아먹고 우울한 생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심지어 바뀐 파트에서도 일이 느려서 팀장한테 '속도 좀 신경써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우울했었다. 그래도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착해서 욕은 안들어 먹었다. 만듀의 말로는 '너는 혼내면 화내는게 아니라 시무룩해지고 찌질거려서 그렇다'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못하는 걸 어찌하는가...! 점점 자존감은 낮아져만 갔다. 밥먹는 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근무했는데 2시간 정도 일을 하면 화장실을 보내주는 거 같았다. 나중에 윤슬의 동생에게 남자HUB 파트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기는 안준다더라. 쿠팡에서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자판기에 있는 모든 음료가 300원이다. 250mL 콜라도 300원, 캔커피도 300원, 미에로 화이바도 300원. 충격적인 물가가 아닐 수 가 없다. 참고로 만듀는 이 날 4캔의 음료를 뽑아먹었다.
어리버리 타다가 밥먹기 전 타임이 끝났다. 만듀와 같이 밥을 먹으러 줄을 서는데, 대기업 답게 CORONA POLICE라는 인물을 배치해 두어 사원 간의 거리를 1m를 유지하게 두었다. 윤슬과 만듀는 이 CORONA POLICE를 매우 싫어했는데 거리 유지하면서 조금 잡담했다고 존나 꼽을 줬다. 우리만 그랬으면 억울하지 않았다! 옆에 친구들끼리 온걸로 보이는, 시끄럽게 지나가는 20대 남성 무리에게는 아무 말도 안하시던 분이, 우리가 조금 말만하면 '거리 유지 해주세요!' 겁나 크게 외치면서 꼽을 줬다. 그래서 난 '우리가 예쁘고 젊어서 그런가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만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밥은 괜찮을 줄... 알았다. 멀리서 보이는 빨간 무침 처럼 보이는 것이 메인 반찬인 제육볶음이라고 생각해서 '역시 대기업, 공짜밥도 좋군 랄루' 이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징어볶음였다. '음 오징어도 나쁘지 않지'라고 생각해서 밥을 받고 와서 확인해 보니. 젠장 오징어 볶음이 아니라 오징어 무침이였다! 이 추운 날씨에 오징어 무침이라니! 입맛이 급격히 떨어진 윤슬은 먹는 둥 마는 둥 핸드폰만 봤다. 그에 비해 왕만듀는 매우 잘 먹었다. 밥을 다먹고 캔커피 타임을 갖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금방 시간이 갔다. 일할 때는 시간 존나 안가더니 쉴 때는 시간이 잘 가더라.
50분 쯤 사람들이 공정으로 이동 하길래 은근슬쩍 끼어서 갔다. 후반타임은 은근히 시간이 잘 갔는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1부는 추억의 2008년 히트곡(ivy의 유혹의 소나타, 원더걸스의 tell me, 동방신기의 주문)도 나오고 빅뱅, 월드스타 BTS, 에스파 노래 등 노동요로 매우 좋은 댄스곡들이 나와서 일할 맛이 났는데, 2부는 힘이 축축 처지는 발라드만 나왔다. 기억에 남는 점은 BTS의 Butter가 10번 넘게 나온거 같은데 이제 인트로만 들어도 스무스라잌버터! 라잌 크리미널 언더커버! 나오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거 같다. 이 정도면 BTS 제 8의 멤버로 데뷔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작은 것들을 위한 시, Dynamite 등 BTS 노래가 정말 많이 나왔다. 라이프 이즈 다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라이프 이즈 다이너마이트. 일하다가 내가 파트 체인지 당한 남부 지방 파트 물량이 끝나서 검수 파트로 옮겨졌다. 일을 너무 못해서 옮겨진거 같다. 거기서는 꿀을 빨았다. 다들 착한 직원 밖에 없는게 내가 일을 정말 못했는데 '힘들죠? 1시간 밖에 안남았어요' 이렇게 격려를 해줬다. 내가 뉴비라서 그런거인거 같다. 계약직이였으면 앞담화 까였을 것이다.
시계가 없어 '와 쿠팡 악독한 놈들 시간 가는거 모르게 하려고 시계도 안 달아놔?' 이렇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시계가 존재하였다. 내 위치에서 안 보였을 뿐. 세상 놀랐던 사실은 사람 사료와 개새끼 밥을 정말 많이 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액체 세제도. 하나 같이 무시무시한 존재들이다. 속으로 씨발씨발 하면서 날랐다. 다른 날 인천1센터 쿠팡HUB 상하차를 뛰었던 윤슬의 동생도 개새끼 밥 이야기만 들으면 치를 떤다.
어찌저찌 9시간이 끝나고 XX노선을 찾아 겨우 탔다. 03시 50분 쯤 처음 출발한 XX역에 도착하였다는데 원래 가기로한 24시 감자탕집이 5시에 오픈을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근처 24시 맥도날드에 가서 맥모닝을 념념굿하였다. 치즈스틱에다가 에스프레소를 추가했다. 만듀는 핫케이크를 추가했는데 정말 존맛처럼 보였다. 그렇게 5시까지 버티다 첫차가 뜨자 집으로 왔다.
오자 마자 씻고 침대에 눕는데, 허리가 녹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꿀잠을 자고 12시에 일어나니 허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레고 인간 처럼 하체와 상체가 따로 노는 기분 이었다. 이는 이틀을 갔는데 이틀 동안 바지도 제대로 입지 못하였다. 급여는 월요일 6시 쯤 들어왔다. 세금 제외 9만원이 들어온걸 보고 바로 배민을 켜서 수제버거를 시켰다.
총 후기를 말하자면 윤슬이 처음 추구했던 '내가 곱게만은 자라지 않았어!' 라는 훈장을 얻은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익일 입금 9.1은 또 다시 윤슬을 쿠팡의 늪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몸을 쓰니 잡념이 사라진다. 그리고 공부가 적성임을 깨달았다...! 공부 열심히 하자 윤슬
3줄 요약
1. 인생에 한번 쯤은 해볼만한 경험
2. 허리랑 무릎 아픈게 이틀간다.
3. 생각보다 여자는 안 힘들다.